외전 18. 우리 엄마

허니버터뚠뚜니라이츄 0 107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정구라고 해요. 집에서 엄마는 정구 혹은 내새끼라고 불렀어요.

 

오늘은 엄마와 같이 갈 데가 있어서, 아침부터 엄마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엄마랑 멀리 꽃구경을 갈 거예요. 석산이 만발한 곳으로 꽃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함께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나서, 꽃구경 갈 날을 기다리면서 정말 기대했어요.

 

엄마는 저의 친엄마는 아니예요. 거리를 헤매던 저를 샤람들이 구조했고, 그 사람들에게서 저를 데려온 게 지금의 엄마예요. 엄마는 저를 데려오자마자 삶은 닭고기에 이것저것 섞어서 밥을 주시곤, 화장실과 잘 곳이 어디인지도 가르쳐주셨어요. 정구라는 이름도 엄마가 지어줬어요.

 

저는 엄마와 함께 지내는 지금이 좋아요. 저를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 말로는, 부모님이 저를 버렸다고 했거든요. 그런 저를 거둬주고 지금의 엄마를 만나게 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엄마는 좋은 분이거든요. 엄마는 저를 정말 끔찍이도 아껴줬어요. 조금이라도 아플 것 같으면 저를 안고 동네 병원으로 달려가고, 밥도 항상 좋은 걸로 먹여주셨죠. 다른 친구들이 놀리거나 때리면 나서서 혼내주기도 하셨어요.

 

저는 지금의 엄마를 만나서 보내는 나날들이 정말 행복해요. 이제 버림받을 걱정같은 거 안 해도 되거든요.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밥도 먹고, 엄마와 함께 지내는 나날들이 너무 행복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평소처럼 건강 검진을 위해 저를 데리고 병원에 갔던 엄마는, 제 신장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신장에 좋지 않으니 사람이 먹는 음식은 줄여주세요'라고 했어요. 엄마는 저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었어요. 엄마가 저녁때마다 해 주던 비빔밥때문에 제 몸이 아프다고 했어요. 그래도 나을 수 있으니까 당분간 비빔밥은 먹지 말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괜찮아, 이번이 마지막 비빔밥이야. 그렇게 말씀하시고 비빔밥을 줬어요. 선생님이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엄마는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약을 먹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태가 좋지 않아질때면 엄마는 병원에서 저를 끌어안고 울었지만, 집에 와서는 선생님 험담을 했어요.

 

엄마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봤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어요.

 

온 몸이 아파서 힘들었어요. 하루하루 아파서 죽을 것 같았지만 엄마는 끝까지 선생님 말은 듣지도 않았어요. 그러던 저에게, 이상한 여자가 찾아왔어요. 엄마와 아는 사람인가 했지만, 엄마는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듯 했어요. 눈 한가득 장미가 피어난 여자는, 많이 아팠냐며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이제 가자고 했지만 저는 갈 수 없었어요. 제가 말도 없이 가버리면 엄마는 어떻게 하나요?

 

여자도 제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그럼 엄마도 같이 가자고 했어요.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엄마와 같이 꽃놀이를 가자고 했어요. 너는 편히 자면서 엄마를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여자를 만난 이후로, 놀랍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이제 다시 엄마와 놀 수 있어요! 비빔밥도 실컷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엄마는 잠든 저를 보고 울기만 할 뿐이었어요.

 

저를 보고 목놓아 울던 엄마는 이상한 판 같은 것을 들고 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했어요. 이상한 판 같은 것에는 제 사진이 있었어요. 엄마는 아침 일찍 그 판을 들고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셨어요. 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보였어요. 밤에 집에 들어와서는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잠들었다가, 아침에 나가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엄마도 병들어버렸어요.

 

저는 아픈 엄마를 보살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엄마가 더 이상 이상한 판을 들고 나가지 않게 된 건 좋았지만, 엄마가 아파서 슬펐어요.

 

전에 만났던 그 여자가 왔어요. 곧 엄마와 함께 꽃놀이를 갈 테니 준비하래요. 야, 신난다! 거의 몇 주만에 나가는건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밖으로 나갔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나지 않았어요. 간만의 외출에 저는 신나서 어쩔 줄을 몰랐어요.

 

아, 저기 엄마가 나왔어요. 그럼 저는, 엄마랑 꽃놀이 하러 갔다 올게요. 안녕!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A구 A동의 한 주택에서 변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신원을 조회해 본 결과 변사체는 50대 여성 A모씨로 확인되었으며, 옆에는 강아지 시체가 하나 있었습니다. 여자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또 사람이 하나 죽었군. ...어? 저 여자, 저 앞 동물병원에서 시위하던 여자 아냐? "

"네? "

"저 앞에 동물병원에서 시위하던 여자 있었잖아. 매일 보여서 얼굴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영락없이 그 여자네. "

 

엄마와 함께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석산이 많이 피어 있었어요. 석산이라는 꽃은 처음 보지만, 꽃대에 붉은 왕관이 달려 있는 꽃이었어요. 잎 하나 없이 초록색 줄기에 빨간 꽃이 달려있었어요.

 

엄마, 엄마! 저기 석산이 엄청 피었어요! 저는 앞장서서 석산이 핀 곳을 돌아보며 엄마를 석산이 가장 예쁘게 핀 곳으로 안내했어요. 엄마, 엄마! 여기서 도시락 먹어요! 이제 저 안 아프니까 비빔밥 주세요!

 

시원한 바람이 느껴져요. 아마 저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인가봐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깥바람이 좋았어요. 얼마만에 밖에 나오는걸까요? 거기다가 얼마만에 보는 꽃인지 모르겠어요. 엄마와 함께 도시에서 지낼 때는 이렇게 만발한 꽃은 본 적 없었어요.도시에서는 아무리 잘 꾸며진 공원이라고 해도, 꽃을 이렇게 많이 심는 곳은 없었거든요. 거기다가 꽃밭에 들어가려고 하면 아저씨들이 못 들어가게 막았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저를 막지 않았어요.

 

아직 가야 할 곳이 많다고 해서, 저는 석산 밭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동물병원에서...? 아, 그러고보니 본 것 같아요. 개가 저 앞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죽었다고 했던가요... "

"어. 근데 알고보니 개 신장이 안 좋아서 사람이 먹는 거 먹이지 말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수의사 양반 말 무시하고 계속 먹였다가 그렇게 된 거래. "

"정말요? "

"어. 그게 얼마나 웃기냐. 하지 말라는건 자기가 다 해놓고, 하지 말라고 한 사람 탓을 하고 있으니... 진짜 한심하더라. "

 

또 길을 걷다 보니, 이번에는 하얗고 큰 꽃들이 판가득 피어있는 곳에 왔어요. 마치 나팔처럼 생겨서, 후 불면 소리가 나올 것 같은 꽃이었어요. 하지만 이 꽃에는 독이 있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대요. 어쩔 수 없이 저는 눈으로만 보기로 했어요. 엄마도 마찬가지인가봐요.

 

그 다음으로 본 것은 하얗고 작은 꽃들이었어요. 꽃잎 하나하나를 맨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별같았어요. 하얗고 작은 꽃들 사이로 걸어가다보면, 길이 끝나는 구간에는 줄기 끝에 분홍색 꽃이 왕관처럼 핀 꽃이 있었어요.

 

그리고 길이 끝나는 곳에, 전에 만났던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꽃놀이는 좋았어? "

"네! 그런데 오랜만에 놀아서 그런지 이제 피곤해요... 집에 가서 엄마랑 자고싶어요. "

 

여자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았어요. 아마도 우리랑 헤어져서 그런걸까요?

 

"그래, 이 길을 지나면 둘 다 푹 쉴 수 있을거야. 하지만, 이 길을 지나가게 되면 너는 엄마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 "

"그게 무슨 말이예요? 엄마랑 함께 할 수 없다고요? "

"너는 엄마와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란다. 엄마도 너와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거야. 하지만 둘이 만났고 헤어졌던 기억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야. "

 

이 길을 지나면 엄마와 헤어져야 한다고요? 안돼요! 저는 엄마랑 같이 갈 거예요! 엄마를 따라 가려고 했지만 길 끝에 있던 여자가 저를 붙잡고 반대쪽 길로 밀어버렸어요.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눈 앞에 환한 빛이 느껴졌어요. 엄마처럼 따뜻한 빛이었어요.

 

"잘 가렴. 다음 생에는, 좋은 사람 만나서 더 예쁨받고 오길. "

 

뒤에서, 저를 배웅하는 인사말이 들렸어요. 그리고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점점 사라져가요. 엄마? 엄마가... 누구였더라?

 

"저렇게 영문도 모르고 널 기다려주던 녀석을... 아픈 걸 뻔히 알면서, 하지 말라는 걸 꾸역꾸역 해서 죽음으로 몰아넣은 기분이 어때? "

"...... "

 

파리하게 마른 여자는 말이 없었다.

 

"이 앞으로 가면, 지옥이야. 너는 네 반려동물을 아프게 했던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고통을 겪게 될 거야.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쓴 죄도 함께 받겠지... "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

"그 아이는 벌써 좋은 곳으로 갔어. 다음 생에는 더 예쁨받고 태어날거야. 네가 다시 이승으로 태어나서 나갈 무렵이면, 몇 번은 윤회하고도 남았겠지. "

"그렇군요... "

 

파리하게 마른 여자의 앞에는, 캄캄한 어둠만이 놓여져 있었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펑탄한 길일지, 가시밭길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녀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죽음으로 몰아간데다 수의사를 모함한 죄로 이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 길의 끝에는 지옥이 있을거라는 것.

 

"윤회의 끝에 다다를때, 그 죄를 다 씻을 수 있기를. "

 

파리하게 마른 여자도 꽃밭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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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거리는 성격. Lv.1에 서울의 어느 키우미집에서 부화했다. 먹는 것을 즐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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